2006년 5월중순의 일이다.
노동부에 전하나은행장 김승유회장을 상대로 부당해고 진정을 접수하고 1차복직이 있기 직전의 일인데, 1차 해고당시 담당부서장이었던 박승신 팀장이 전화를 해왔다.
"차과장, 요즘 어떻게 지내? 술이나 한잔할까?"
사실 박승신팀장으로부터 연락오기 전에 이미 황인산 인사부장을 두번이나 만난 다음의 일이었다. 아마도 인사부장으로 설득이 안되자 이제는 안면이 있고 솔직한 대화가 될만한 사람을 내세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첫번째 인사부장과의 만남은 하나은행 본점뒤의 맥주집에서의 일이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떠보는 시간이었고 아무런 대화에 진전이 없었다. 그랬더니 며칠후 다시 김형국과장한테서 연락이 와서 인사부장과 다시 만나자고 해서 나는 이제 할 말이 더 없으니 말할 것이 있으면 일산으로 오라고 했다. 아마도 하나은행 인사부장이 머슴으로 부리던 놈을 만나러 일산까지 오는데는 많은 생각을 가지고 왔으리라 본다. 당시 두번째 만남은 인사부장, 김형국과장, 노무사두명과의 만남이었는데, 머슴하나 만나러 네명씩이나 오다니 상당히 다급했던 모양이었다. 김승유회장이 노동부에 출석하기 직전으로 생각되며, 어떻게 하던지 김승유회장을 노동부에 출석시키지 않고 내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자 선수를 바꿔서 직속상사였던 박승신팀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아침 9시밖에 안되었는데 박승신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당장 만나자는 것이다. 사태가 위급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나는 그럴수록 느긋하게 대응했다.
"팀장님, 잘 지내시죠? 그런데 제가 오늘 바뻐서 서울로 나갈수는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갈테니까, 일산 어디지?"
매우 다급했던 모양이다. 10시도 되지 않아서 박승신팀장이 당시 내가 잠시 도와주던 민주노동당 고양시의원출마자의 선거사무실로 찾아왔고, 그 시간에 일산까지 왔다면 아마도 출근하자마자 출발했거나 아니면 바로 나를 만나러 출발했을 것이다.
아침 7시부터 조병제 인사담당이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빨리 차윤석을 만나보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심중만을 읽어보려고 했지 가져온 것은 없었다. 다음날 노동부에 대질조사할 것이있어서 만나게 될 터이니 그 때 한잔하자면서 일단 헤어졌다.
5월 말이 되갈때였는데 노동부에 출석해보니 이미 박승신팀장이 도착해 있었고, 자필진술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나에게 꾸준히 재계약을 설득하였고 내가 거부하였다는 이야기인데 말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하였고 결국 계약기간이 끝난 뒤인 6월10일경에 재계약서가 도착하였다고 날짜까지 내가 진술하기 시작하자 감독관도 더 이상의 진술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노동부를 둘이 나왔는데 박승신팀장이
"차과장, 뭐 좋아하나? 오늘 내가 한잔 살테니까 말해봐"
나는 느리게 행동하는 편이고 말이 빠른 편이 아니라서 사실 박승신팀장 같은 재빠른 성격의 사람들은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런 사람한테서 이런 말이 나오길래 내심 놀라웠으나 하나은행이 얼마나 급하길래 이러는가를 생각하니 속으로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법구경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욕심을 부리는 자는 돈이 비처럼 쏟아져 들어와도 만족할 줄 모른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비록 조금이라도 욕심을 맛보는 것을 괴로움으로 안다"
내가 아무리 비싼것을 먹자고해도 그대로 되리라 생각되었지만,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오랜만에 같이 하는 술자리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차과장, 일단 갈비로 시작하지?"
하면서 하나은행 행당동지점 건너편의 갈비집으로 들어가서 소주에 갈비를 느긋하게 먹었다. 소주를 둘이서 세병정도 마신듯하다. 나도 주량이 약한 편은 아닌데 박승신팀장도 주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새삼느끼면서, 2차는 어디로 갈까? 하는 말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울것 같아 근처의 호프집으로 갔다.
아마 11시쯤 되었을텐데 박승신팀장이 나하고의 독대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내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나와 근무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나와 한잔하고 있으니 나오라고 전화를 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라 호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박승신팀장에게 전화가 한통화 걸려왔는데
"어...지금 차과장하고 한잔하고 있어, 음..음..그래,"
하면서 전화를 끊고 나더니 내가 눈치를 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인사부 조재한과장에게서 온 전화라고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 인사부직원이 전화한다는 것은 오늘의 만남이 인사부가 뒤에서 조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소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셨으니 당연히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나도 차츰 눈빛에 힘을 잃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12시가 막 넘었을때였다. 그때 박승신 팀장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차과장은 두배로 줄테니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는 회사에 맡기지?"
하면서 내 눈앞에 손가락을 브이자처럼 두개를 펼쳐보이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 만남의 목적을 박승신팀장이 꺼낸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제안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지 오래되었고 금액이 아니라 두배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아직도 가격을 깍으려는 속셈이 보여서 인사부가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얼마라고 말하는 것과 두배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점은 두배라고 했다가 나중에 그 기준이 무엇이냐고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출발하게 되고 결국은 안주려는 속셈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점은 노동조합일을 하다가 누가 얼마를 받고 사라졌다라는 식의 소문을 주변에서 가끔 듣는데 그런 사람들의 9할은 돈도 못받고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당하면서 쓸쓸히 노동판을 떠난 것이라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왜냐하면 얼마를 받고 사라져주기로 하면 바로 그 다음날 온 회사에 누가 얼마를 받았다라는 소문을 인사부가 퍼뜨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소식이 동료들에게 들어가게 되고 자신은 숨을 곳이 없어서 스스로 사라져야 되는데 인사부에 연락해서 돈을 달라고 하면 그 놈들이 절대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지금 인사부와 협상중인 사람이 있다면 이 내용을 명심하기 바란다. 꼭 돈을 받고 사라지고 싶다면 그럴때는 돈을 가지고와서 앞에 놓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된다. 그러나 또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그들이 돈을 먼저 가지고 오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돈만 받고 당신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인 것이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화장실로 가는데 박승신팀장이 따라와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같이 소변을 보자고 하길래 하나의 변기에 둘이 같이 볼일을 보았다.
잠시후 다시 들어와서 내가 말을 꺼냈다.
"팀장님 지금 하신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역시 재빠른 성격답게 금방 알아듣고는
"차과장, 나중에 돈 받으면 술 한잔 사야되 알았지?"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일어났다. 대리기사까지 불러줘서 아주 편안하게 집까지 올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술도 깨지 않았는데 한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과장님, 박승신팀장이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왔다고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하하하"
"어 그래? 손가락은 두개 펼쳐보이던데, 하하하하"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는 이유는 나같은 사람이 우리사회에 다시 없기를 바라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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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는 계속됩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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