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은행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96년이었다.
부서를 특정한 고용형태였는데 어음교환실이라는 곳이었으며 그런데로 만족하면서 근무하다가 2001년도에 승진이라는 뜻밖의 선물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것이 기간제근로의 시작이었고 결국 해고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당시 세명정도가 후보에 올랐던 것 같은데 그중 두명이 상무와 면접을 보게 되었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지 그대로 승진이 확정되었다. 며칠 후 인사부 김승준대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대리님, 축하합니다"
사실 아직 발령장을 받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벌써 대리라고 호칭을 해주다니 내가 기분좋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부에 발령장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발령장과 함께 종이 한장을 더 내미는데 살펴보니 3년기한의 고용계약서였다.
"이게 뭡니까?"
하였더니 김승준대리인지 김성중대리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요즘 IMF 이후에 이게 추세입니다. 앞으로 더 승진하시려면 회사방침에 따르셔야 할 겁니다."
나는 참 바보같이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리 승진발령장과 계약서를 쓰고 나왔더니 직원 한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발령장을 보자고 하여 보여주었더니 축하한다고 말하는데 왠지 내 마음속에는 기쁨과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작지만 아주 깊은 곳에 새겨졌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길래 근처 중화요리집에 가서 허기진 배도 채우고 한잔 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나은행을 위하여 일해야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뒤돌아보면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2004년3월이 만기였는데 한두달 전부터 불안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과연 하나은행이 나와 다시 계약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인사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당시 부서장이었던 박승신팀장도 인사부에서 연락이 없는데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자고 하면서 조용히 있자고 하여 내색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해 6월10일 드디어 인사부로부터 계약서가 도착하였다면서 박승신팀장이 불렀다. 가서보니 계약서가 6장이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의 것까지 모두 있었고 전부를 나에게 주면서 서명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내가 담당하는 조원들은 몰라도 다른 조원들은 담당 책임자가 따로 있으니 그를 만나서 전달해주겠다고 하였고 그날은 금융결제원에서 각은행의 어음교환 담당자들이 워크샵을 가는 날이어서 분명하게 기억할 수가 있었다.
워크샵이라는 것이 공부할 것도 있지만 2박3일인지라 저녁시간에는 각은행의 어음교환담당자들과 야외에 나와서 한잔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서도 제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대한 걱정으로 밤하늘이 왜이리 캄컴한지 내마음 같다고 생각했고 별은 왜 그리 반짝이는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워크샵에서 돌아와서 내가 담당하는 조의 직원들에게는 계약서를 나누어 주면서
"나는 계약서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써라마라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라고 이야기 하였고, 몇몇 직원들은 쓰지말자 아니다 써야한다 의견이 분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내 생일을 하루 앞두고인가 하여튼 저녁이었는데 인사부 김승준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정규직입니까 비정규직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은행이 나에게 나쁜 일을 꾸미고 있구나 절대 물러서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과장님은 정규직대우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재차 물었다.
"제가 정규직입니까 아닙니까? 간단히 대답해주세요"
하였더니 김승준대리가 나에게 하는 말이
"정규직이 뭡니까? 저한테 설명 좀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반문을 하는 것이었다. 인사부 직원이 나한테 정규직에 대하여 설명을 해달라니 말그대로 피가 꺼구로 솟아오른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군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며 끝끝내 투쟁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기 시작하자 박승신팀장으로부터 재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계약서에 서명해서 제출하라고 직원들도 내가 버티기 시작하자 다들 버티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직원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자 우루루 모두 따라서 한순간에 서명하였고 결국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이며 그들을 선동하거나 동참을 호소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오직 자신의 곧은 신념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계속 -
2007년 6월 27일 수요일
2007년 6월 19일 화요일
하나은행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 하여야 한다
우리은행에 이어 얼마전 현대자동차가 사무직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3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고 오늘 신세계가 5천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였다.
하나은행도 상시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
신세계는 지난해 수천억원의 증여세를 냈으며, 이번에도 '윤리경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 정년보장과 자녀학자금등 지난 우리은행의 경우보다도 한단계 높은 방안을 결정했다. 파트타이머, 캐셔가 대부분이며 선별적으로 하지 않고 모두를 대상에 포함하였고 150억원 정도의 추가부담이 생겼다고 한다. 이정도의 돈이면 하나은행에게는 부담스러운 돈이 아닐터인데 하나은행은 '도덕경영'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직무급이 낮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직원들을 홀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발전에는 분명히 노동자의 땀이 스며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은행의 발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무한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간과하지 말고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직원만족을 위하여 노력할 때이다.
법은 지키자고 만드는 것이지 피해가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줄 것은 늦게 주고 받을 것은 빨리 받아야 사업을 잘한다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통념은 사라져야 하며, 이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업들에 의하여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하나은행이 바로 우리사회에 모범이 되고 '도덕경영'을 널리 알려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하나은행은 얼마전 채권추심을 담당하던 직원들 1백명 정도를 고용승계를 통하여 다른 회사로 내보냈으며, 수년간 근무했던 창구여직원들의 상당수를 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밀거래식 인사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정정당당한 '도덕경영'을 하기 바란다.
부디 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하나은행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은행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하나은행도 상시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
신세계는 지난해 수천억원의 증여세를 냈으며, 이번에도 '윤리경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 정년보장과 자녀학자금등 지난 우리은행의 경우보다도 한단계 높은 방안을 결정했다. 파트타이머, 캐셔가 대부분이며 선별적으로 하지 않고 모두를 대상에 포함하였고 150억원 정도의 추가부담이 생겼다고 한다. 이정도의 돈이면 하나은행에게는 부담스러운 돈이 아닐터인데 하나은행은 '도덕경영'을 앞세우면서 뒤로는 직무급이 낮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직원들을 홀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의 발전에는 분명히 노동자의 땀이 스며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은행의 발전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근무한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간과하지 말고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직원만족을 위하여 노력할 때이다.
법은 지키자고 만드는 것이지 피해가라고 만드는 것이 아니다. 줄 것은 늦게 주고 받을 것은 빨리 받아야 사업을 잘한다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통념은 사라져야 하며, 이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업들에 의하여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하나은행이 바로 우리사회에 모범이 되고 '도덕경영'을 널리 알려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하나은행은 얼마전 채권추심을 담당하던 직원들 1백명 정도를 고용승계를 통하여 다른 회사로 내보냈으며, 수년간 근무했던 창구여직원들의 상당수를 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해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밀거래식 인사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정정당당한 '도덕경영'을 하기 바란다.
부디 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하나은행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은행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2007년 6월 13일 수요일
북 그리고 1차 감자수확
은정아빠의 협박(?)에 못이겨 오늘 북(!)돋아주고 왔다.
감자가 이렇게 잘 자랐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북위로 나온 것들도 있어서 흙을 더 덮어주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감자는 캐내고 꽃을 따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사실 나는 서울촌놈이라서 감자가 흙속에 뭍혀있는 것을 처음 보았으며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감자나무(?)를 언제까지 키우는거지? 계속 키우면서 감자만 하나둘 캐내도 될 것 같은데....아닌가.....극적극적;;;
아참, 고구마도 몇개 심었다.
오늘은 어제 캐온 감자를 쪄먹었는데 미식가도 아닌 내가 느낄 정도로 상추나 갓처럼 그동안 사먹던 감자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오징어를 삶아서 채소와 양념장에 찍어먹고 감자도 먹고 아주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감자가 이렇게 잘 자랐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북위로 나온 것들도 있어서 흙을 더 덮어주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감자는 캐내고 꽃을 따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사실 나는 서울촌놈이라서 감자가 흙속에 뭍혀있는 것을 처음 보았으며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감자나무(?)를 언제까지 키우는거지? 계속 키우면서 감자만 하나둘 캐내도 될 것 같은데....아닌가.....극적극적;;;
아참, 고구마도 몇개 심었다.
오늘은 어제 캐온 감자를 쪄먹었는데 미식가도 아닌 내가 느낄 정도로 상추나 갓처럼 그동안 사먹던 감자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오징어를 삶아서 채소와 양념장에 찍어먹고 감자도 먹고 아주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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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행
지난 토요일 점심은 부로농원에서 보신탕과 술 한잔으로 채우고 연꽃이 아름다워서 한장 찍었다.
저녁에는 북한산 21야영장에 올라가서 산악회원들과 야영을 했다.
힌두쿠쉬 원정대를 격려하는 발대식이었으며 그중에는 무명봉 도전도 있어서 세계초등을 노리는 청죽산악회가 자랑스러웠다.
내려오는 길에 인수봉을 배경으로 ~
저녁에는 북한산 21야영장에 올라가서 산악회원들과 야영을 했다.
힌두쿠쉬 원정대를 격려하는 발대식이었으며 그중에는 무명봉 도전도 있어서 세계초등을 노리는 청죽산악회가 자랑스러웠다.
내려오는 길에 인수봉을 배경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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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0일 일요일
시간외수당청구소송 하나은행측의 답변서
시간외수당청구소송에 대한 하나은행측의 답변서가 도착하였는데 어처구니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럴때 쓰는 말인듯하다. 전혀 있지도 않았던 일을 판사가 제3자라는 점을 이용하여 마치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변론하다니 과연 하나은행의 도덕경영이 이런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도대체 누가 이런 소설을 지어내는지 궁금하고 이를 부추기는 변호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임자에 불과했기에 근무형태나 근로시간은 부서장이 정하여 주는데로 근무하였는데 어음교환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주장하는 답변서를 읽으면서 기가차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체적으로 결정하였거나 책임자에게 일임을 하였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 할 터인데 이번 답변서에는 증거나 첨부문서조차 없고 오로지 주장만 있을 뿐이어서 그동안 하나은행과 여러 소송을 하면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답변서를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다.
시간외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피고입장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근로형태를 책임자에게 일임하였고 근로시간을 마음데로 조정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발상이 참으로 불쌍하며 소송에서 지지 않으려고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지어낸 거짓말로 생각된다. 이제 변론이 시작되었으니 그 결과를 지켜보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하나은행이 비참해 보인다. 책임자에게 일임을 하였다고 그것도 자신들이 말하는 직무급이 낮은 비정규직 책임자에게 그런 커다란 권한을 주었다고 주장하다니 부서장은 폼으로 앉아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부서장이었던 박승신팀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야겠다.
스캔해두었으니 실소를 할 수 밖에 없는 답변서를 보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이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웃음만 나올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공개해 버릴까?
나는 책임자에 불과했기에 근무형태나 근로시간은 부서장이 정하여 주는데로 근무하였는데 어음교환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였다고 주장하는 답변서를 읽으면서 기가차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체적으로 결정하였거나 책임자에게 일임을 하였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 할 터인데 이번 답변서에는 증거나 첨부문서조차 없고 오로지 주장만 있을 뿐이어서 그동안 하나은행과 여러 소송을 하면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답변서를 받아보는 것도 처음이다.
시간외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피고입장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근로형태를 책임자에게 일임하였고 근로시간을 마음데로 조정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발상이 참으로 불쌍하며 소송에서 지지 않으려고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지어낸 거짓말로 생각된다. 이제 변론이 시작되었으니 그 결과를 지켜보겠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하나은행이 비참해 보인다. 책임자에게 일임을 하였다고 그것도 자신들이 말하는 직무급이 낮은 비정규직 책임자에게 그런 커다란 권한을 주었다고 주장하다니 부서장은 폼으로 앉아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부서장이었던 박승신팀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야겠다.
스캔해두었으니 실소를 할 수 밖에 없는 답변서를 보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이멜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웃음만 나올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공개해 버릴까?
2007년 6월 4일 월요일
감자밭과 청죽산악회
토요일에 밭에 갔더니 감자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아주 하얀색은 아니고 약간 보라빛이 도는 것이 참 예뻤다.
비료를 준비해서 주어야 수확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 저녁에는 오랜만에 산악회 사람들과 자주가던 곱창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년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있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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