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27일 수요일

6. 해고의 시작 - 에피소드 I (정규직이 뭡니까?)

내가 하나은행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96년이었다.

부서를 특정한 고용형태였는데 어음교환실이라는 곳이었으며 그런데로 만족하면서 근무하다가 2001년도에 승진이라는 뜻밖의 선물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것이 기간제근로의 시작이었고 결국 해고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당시 세명정도가 후보에 올랐던 것 같은데 그중 두명이 상무와 면접을 보게 되었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지 그대로 승진이 확정되었다. 며칠 후 인사부 김승준대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대리님, 축하합니다"

사실 아직 발령장을 받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 벌써 대리라고 호칭을 해주다니 내가 기분좋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부에 발령장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발령장과 함께 종이 한장을 더 내미는데 살펴보니 3년기한의 고용계약서였다.

"이게 뭡니까?"
하였더니 김승준대리인지 김성중대리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요즘 IMF 이후에 이게 추세입니다. 앞으로 더 승진하시려면 회사방침에 따르셔야 할 겁니다."
나는 참 바보같이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리 승진발령장과 계약서를 쓰고 나왔더니 직원 한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발령장을 보자고 하여 보여주었더니 축하한다고 말하는데 왠지 내 마음속에는 기쁨과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작지만 아주 깊은 곳에 새겨졌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길래 근처 중화요리집에 가서 허기진 배도 채우고 한잔 하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나은행을 위하여 일해야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뒤돌아보면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2004년3월이 만기였는데 한두달 전부터 불안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과연 하나은행이 나와 다시 계약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인사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당시 부서장이었던 박승신팀장도 인사부에서 연락이 없는데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자고 하면서 조용히 있자고 하여 내색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해 6월10일 드디어 인사부로부터 계약서가 도착하였다면서 박승신팀장이 불렀다. 가서보니 계약서가 6장이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의 것까지 모두 있었고 전부를 나에게 주면서 서명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내가 담당하는 조원들은 몰라도 다른 조원들은 담당 책임자가 따로 있으니 그를 만나서 전달해주겠다고 하였고 그날은 금융결제원에서 각은행의 어음교환 담당자들이 워크샵을 가는 날이어서 분명하게 기억할 수가 있었다.

워크샵이라는 것이 공부할 것도 있지만 2박3일인지라 저녁시간에는 각은행의 어음교환담당자들과 야외에 나와서 한잔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술을 마시면서도 제대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대한 걱정으로 밤하늘이 왜이리 캄컴한지 내마음 같다고 생각했고 별은 왜 그리 반짝이는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워크샵에서 돌아와서 내가 담당하는 조의 직원들에게는 계약서를 나누어 주면서

"나는 계약서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써라마라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라고 이야기 하였고, 몇몇 직원들은 쓰지말자 아니다 써야한다 의견이 분분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내 생일을 하루 앞두고인가 하여튼 저녁이었는데 인사부 김승준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정규직입니까 비정규직입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은행이 나에게 나쁜 일을 꾸미고 있구나 절대 물러서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과장님은 정규직대우를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재차 물었다.

"제가 정규직입니까 아닙니까? 간단히 대답해주세요"
하였더니 김승준대리가 나에게 하는 말이

"정규직이 뭡니까? 저한테 설명 좀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반문을 하는 것이었다. 인사부 직원이 나한테 정규직에 대하여 설명을 해달라니 말그대로 피가 꺼구로 솟아오른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군요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며 끝끝내 투쟁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기 시작하자 박승신팀장으로부터 재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계약서에 서명해서 제출하라고 직원들도 내가 버티기 시작하자 다들 버티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직원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자 우루루 모두 따라서 한순간에 서명하였고 결국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이며 그들을 선동하거나 동참을 호소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오직 자신의 곧은 신념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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