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8일 일요일

은평시민신문에

  은평시민신문 류한승 기자가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기사(2007.9.23.)를 쓰면서 중간쯤에 금융권 비정규직 문제의 하나로 나를 언급하였는데 오랜만에 접하는 아주 수려한 글이다.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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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과연 지난 20년동안 우리는 얼마나 현명해진 것일까?
류한승
누군가의 구둣발이 지렁이 한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 이시영, 「귀가」 全文

지난 8월말 ㅂ씨는 그동안 일해오던 이마트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했다. 고객에게 무례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마트 베이커리에서 일하던 그는 젊은 여성 고객이 안고 온 강아지가 시식코너의 빵에 코를 들이미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로막았다. <고객의 소리>에 항의글이 올라왔고 담당 파트장은 다음날 사직서를 쓰게 했다. 6년동안 일해왔던 직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마트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이 파업을 불사하며 거부하고 있는 바로 그 외주용역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이러한 일들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당사자의 충격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가 알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상담기관을 찾은 경우들이다. 하지만 알려진 사례들만 얘기하려고 해도 며칠 밤을 새워야 한다. 비정규센터가 주최한 행사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난 한 대학생의 소감은 이랬다. “다른 방법이 안보인다. 열심히 공부해서 정규직이 되는 수밖에 없겠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학생들에게 당연한 생각일지는 모르나 그렇게 들어간 직장은 또 어떤 곳일까?

“노예처럼 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KTX 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의 말이다. 학생운동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는 KTX 승무원들. 전원 대졸 이상의 학력으로 최고 136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서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로 불리던 이들, “청소일하는 사람들이야 비정규직 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겨우 1년만에 전원 파업에 동참하고 500일이 넘도록 거리에서 투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여성노동자는 어느 기업에 가도 어차피 똑같다. 노예로 침묵하거나 새로 투쟁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난한 투쟁을 통해 승무원들이 배운 교훈이다.

▲ 집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는 이랜드와 KTX 노동자들. [출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 류한승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정규직이라고 다른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노동의 분절, 노동자의 분할’은 정규직을 귀족 대접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꿈의 직장이라는 은행에서 8년동안 밤낮없이 일해서 과장으로 승진한 차윤석 씨는 계약직 전환을 거부했다가 해고되었다. 정규직 직원들은 꾸준히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계약직으로 채워지는데, 다시 계약직의 고용불안은 정규직의 노동강도를 높인다. 여기에 무한경쟁과 성과급제 확산은 노동자들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당연히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똑같이 일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을 위협하는 코앞에 닥친 미래다. 위계와 차별로 짜여진 일상의 벽은 비정규직의 가장 큰 적을 정규직으로 만든다.

그래서, 무권리 상태에서 고립된 비정규직의 파업을 정규직이 무심하게 지켜보고 정규직의 파업이 비정규직 대체인력 투입으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의 삶도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짓밟는 자와 짓밟히는 자를 구분하지 못한 채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규칙에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짓밟는데 열중할 뿐이다. 결국 ‘세븐-일레븐’의 노동강도를 당연하게 여기며 붐비는 퇴근길에도 처세술 책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아귀다툼 속에 당신의 인생은 소모될 것이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토록 명확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랜드 비정규노동자들의 싸움에 이 모든 과제가 걸려있다는 점이다. 이랜드의 파업은 폭력적인 외주용역화와 기만적인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투쟁이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결실이 이랜드노조다. 도시민들의 생활공간인 유통매장을 멈추며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끌어낸 싸움이다. 지난 수년동안 끝없이 패배하고 무너져온 수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염원, 노동운동의 풀지못한 과제들이 집중된 일전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과연 누구의 몫인가?

▲ 농성장에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이랜드노조 월드컵분회 조합원들. [출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류한승
몇 달 전만 해도 노동법의 ‘노’자도, 파업의 ‘파’자도 들어본 적 없는 이들, 파업투쟁이 ‘쑥스럽고 무섭고 힘들지만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 구사대에게 맞고도 식구들이 집회참석을 못하게 할까봐 아픈 기색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 싸움의 주역이다. 아니 주역이 되어버렸다. “상우야 사랑해, 너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게.”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여성노동자들이 그 울먹임의 힘만으로 석 달이 넘게 파업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 가처분과 파업대오에 대한 폭력행사,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고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들의 미래를, 당신과 나의 인생이 걸린 그 엄청난 전선의 대오를…. 다리가 퉁퉁 붓고 방광염에 걸리도록 일해서 받던 80만원의, 단지 그 일자리를, 가족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20년쯤 전에 한국의 노동자들은 똑같은 야만과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뭉쳤고 싸웠다. 수없이 패배했지만 그 싸움을 통해 노동자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민주노조가 건설되고 진보정당이 만들어졌다. 지금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사회적 증오와 고립의 대상이 되어버린 바로 그 운동이다. 과연 지난 20년동안 우리는 얼마나 현명해진 것일까?

얼마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는 가끔 이런 악플이 달린다. “그게 다 김대중이 선동해서 광주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 한 것이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아줌마 눈물 뒤에 민주노총 있다’는 선동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놀랄 일은 아니다. 권력은 원래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법이다. 그러나 수십년 후에야 상식을 되찾기에는 이랜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 절박하다.

이제 추석이다. 가까운 대형할인점에서 선물보따리를 구입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구둣발 밑에 무엇인가가 으깨어지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을까? 그건 당신의 인생일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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