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수) 고양시에 해고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있는데 자신들의 수련회에 와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다녀왔다.
세일자동차운전학원이라고 내가 사는 일산 풍동에 있는데 무더기 해고사태가 벌어진 곳이다. 사실 나는 2종면허와 1종면허를 모두 그곳에서 합격했었다.
내가 그동안 격었던 해고과정에 대하여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한시간 동안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열심히 이야기 했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고 나의 경험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말하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강의요청은 처음인지라 많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실전적인 대화가 오가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아마도 해고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조합원들의 심정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 그들에게 내가 해준 이야기들 중에서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뿐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수석부위원장이 추천해 준 모양이었다. 세일자동차노동조합 위원장이 내가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오려는데 강의료를 대신해서 차비를 준다고 하길래 투쟁기금으로 하시라고 사양했다.
주로 내가 투쟁해 온 이야기여서 강의자료는 특별히 필요하지 않았는데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있다면 조금 정리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8년 10월 24일 금요일
2008년 10월 15일 수요일
설악산 백운동 계곡에 다녀오다
10월 11일(토)~12일(일) 1박2일로 설악산에 다녀왔다.
등산코스는 한계령-서북주능-백운동(곡백운)-수렴동-백담사 였다.
토요일 저녁 5시 조금 지나서 산오리님과 출발해서 한계령에 도착하니 9시경이었다. 등산객들이 조금 있었고 휴게소 건너편 길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서북주능을 향해 올라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두번째 봉우리를 지나 철다리 아래에 천연동굴이 있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 비박하기로 마음먹었다. 찾을 수 있을지 밤이라서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달빛에 취해서 오가피주를 한잔 마시자 나는 '설악가'가 절로 나왔다. 산오리님은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철다리를 붙들고 구슬프게 불렀다. 한 두시간 정도 잤을까 철다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소리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관광버스 타고 온 사람들이라 수십명 지나가면 조용해 지겠지 했는데 단풍철이라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이 끝없이 올라왔고 랜턴불빛이 장관을 이룰 지경이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다시 일어나 짐을 싸들고 백운동으로 향했다. 새벽 4시정도에 멈추어서 불편하지만 8시까지 더 잤다. 자는 동안에 사람은 아니고 짐승 발자국 소리가 '사각사각' 점점 가까이 왔었는데 큰 짐승은 아닌듯하여 계속 잤다.
아침으로 라면과 밥을 먹고 백운동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10년만에 찾아왔지만 홍수에 나무들이 많이 쓰러진 것 말고는 원시적인 계곡의 느낌은 그대로였다. 깊은 설악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백운동 계곡의 백미인 백운폭포를 돌아내려왔고 사진도 간간히 찍으면서 내려왔다.
백운동 특유의 계곡 전체가 하나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두시간 쯤 내려오니 직백운과의 합류지점에 이르렀다. 어제밤에 혹시 길을 잘못들어 직백운으로 내려오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었다. 매우 험한 곳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조심했었으나 잘 찾아 내려왔다.
백운동을 거의 빠져 나왔을 무렵 내가 예전에 비박했던 커다란 바위 아래의 모래 쌓인곳을 발견했다. 여전히 비박하기에는 아주 적당해 보였다. 수렴동으로 향하기 위해 구곡담과 만나는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백운동을 내려오면서는 사람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단풍철인데도 아무도 없다니 아직도 백운동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험한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구곡담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역시 아름다웠고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도 지루하고 힘들지만 아름다운 계곡이 좋았다. 백담사에는 용대리까지 가는 버스가 생겼는데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금은 1,800원 서서가는 사람이 없어서 줄을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9대로 운행하고 있었다. 용대리로 내려와서 황태구이를 먹었는데 맛이 훌륭했다.
차를 한계령에 두었는데 택시비가 너무 비싸서 산오리님이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한계령까지 올라가서 차를 가지고 오고 나는 한계삼거리 파출소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 운전은 올때처럼 번갈아 했는데 홍천으로 오는 길은 막혀서 양구로 춘천으로 돌아왔는데도 3시간 반 정도에 일산까지 왔다. 앞으로 집에 올때는 이길로 다녀야겠다.
중간에 오음리 근방을 지나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1990년에 나는 산악회 동료와 둘이서 서울에서 속초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음리를 지나갔었다. 지금은 직선으로 터널이 생겨서 옆으로만 지나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랜만에 간 설악이라서 그런지 매우 즐거웠으며 조용한 백운동의 단풍이 아름다웠다.
1.한계령 천연동굴에서 비박 2.백운폭포 앞에서
3.곡백운과 직백운의 합수지점에 있는 무명봉 4.구곡담에서
등산코스는 한계령-서북주능-백운동(곡백운)-수렴동-백담사 였다.
토요일 저녁 5시 조금 지나서 산오리님과 출발해서 한계령에 도착하니 9시경이었다. 등산객들이 조금 있었고 휴게소 건너편 길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서북주능을 향해 올라갔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두번째 봉우리를 지나 철다리 아래에 천연동굴이 있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 비박하기로 마음먹었다. 찾을 수 있을지 밤이라서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달빛에 취해서 오가피주를 한잔 마시자 나는 '설악가'가 절로 나왔다. 산오리님은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철다리를 붙들고 구슬프게 불렀다. 한 두시간 정도 잤을까 철다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소리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관광버스 타고 온 사람들이라 수십명 지나가면 조용해 지겠지 했는데 단풍철이라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이 끝없이 올라왔고 랜턴불빛이 장관을 이룰 지경이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다시 일어나 짐을 싸들고 백운동으로 향했다. 새벽 4시정도에 멈추어서 불편하지만 8시까지 더 잤다. 자는 동안에 사람은 아니고 짐승 발자국 소리가 '사각사각' 점점 가까이 왔었는데 큰 짐승은 아닌듯하여 계속 잤다.
아침으로 라면과 밥을 먹고 백운동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10년만에 찾아왔지만 홍수에 나무들이 많이 쓰러진 것 말고는 원시적인 계곡의 느낌은 그대로였다. 깊은 설악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백운동 계곡의 백미인 백운폭포를 돌아내려왔고 사진도 간간히 찍으면서 내려왔다.
백운동 특유의 계곡 전체가 하나의 암반으로 이루어진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두시간 쯤 내려오니 직백운과의 합류지점에 이르렀다. 어제밤에 혹시 길을 잘못들어 직백운으로 내려오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었다. 매우 험한 곳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조심했었으나 잘 찾아 내려왔다.
백운동을 거의 빠져 나왔을 무렵 내가 예전에 비박했던 커다란 바위 아래의 모래 쌓인곳을 발견했다. 여전히 비박하기에는 아주 적당해 보였다. 수렴동으로 향하기 위해 구곡담과 만나는 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백운동을 내려오면서는 사람을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단풍철인데도 아무도 없다니 아직도 백운동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험한 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구곡담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역시 아름다웠고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도 지루하고 힘들지만 아름다운 계곡이 좋았다. 백담사에는 용대리까지 가는 버스가 생겼는데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금은 1,800원 서서가는 사람이 없어서 줄을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9대로 운행하고 있었다. 용대리로 내려와서 황태구이를 먹었는데 맛이 훌륭했다.
차를 한계령에 두었는데 택시비가 너무 비싸서 산오리님이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한계령까지 올라가서 차를 가지고 오고 나는 한계삼거리 파출소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길 운전은 올때처럼 번갈아 했는데 홍천으로 오는 길은 막혀서 양구로 춘천으로 돌아왔는데도 3시간 반 정도에 일산까지 왔다. 앞으로 집에 올때는 이길로 다녀야겠다.
중간에 오음리 근방을 지나는데 예전 생각이 났다. 1990년에 나는 산악회 동료와 둘이서 서울에서 속초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음리를 지나갔었다. 지금은 직선으로 터널이 생겨서 옆으로만 지나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오랜만에 간 설악이라서 그런지 매우 즐거웠으며 조용한 백운동의 단풍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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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8일 수요일
정부,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으로 연장추진
정부가 현행 2년으로 규정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제한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현행 32개 파견업무도 더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만들고 국회에서 통과될 때 노동부에 가보았더니 2년 뒤면 정규직이 될 수 잇다면서 홍보한 책자들이 생각난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었다.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는 한심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내년 7월이면 수백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니 피해가려는 속셈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재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업 프렌들리'가 어떤 결과를 낳을런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비정규직 문제가 될 것이고 커다란 저항의 불씨가 이제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수십년 동안 성장위주의 정책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이다.
비정규직 조직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표출하는데 극히 소심하다는 것이고 고용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나서지를 못한다는데 있다. 이는 결국 노동조합이나 법적인 해결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들의 저항이 시작되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새로운 비정규직의 촛불이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이미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촛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참여를 시작해야겠다.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만들고 국회에서 통과될 때 노동부에 가보았더니 2년 뒤면 정규직이 될 수 잇다면서 홍보한 책자들이 생각난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었다.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는 한심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내년 7월이면 수백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고용불안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니 피해가려는 속셈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재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업 프렌들리'가 어떤 결과를 낳을런지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비정규직 문제가 될 것이고 커다란 저항의 불씨가 이제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수십년 동안 성장위주의 정책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이다.
비정규직 조직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자신을 표출하는데 극히 소심하다는 것이고 고용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나서지를 못한다는데 있다. 이는 결국 노동조합이나 법적인 해결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비정규직들의 저항이 시작되면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새로운 비정규직의 촛불이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이미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촛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참여를 시작해야겠다.
2008년 10월 5일 일요일
북한산 노적봉에 다녀오다
여름에 산에 다녀오고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북한산 노적봉에 10년만에 가본듯하다. 산은 역시 변한 것이 없었고 나를 반겨준다.
구파발쪽으로 해서 3명이 다녀왔는데 등산코스는 위문까지 다 올라가서 만경대 아래를 돌아 북한산산장 쪽으로 20분쯤 가다가 노적봉으로 갈라졌다.
노적봉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위험로라고 표시되있는 곳을 넘어 들어가야 한다. 가파르지만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5분만에 도착했다. 전망은 북한산 북쪽이 모두 보이는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것이라 가슴이 탁 트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잠시 쉬었더니 추위가 느껴질 정도다.
등산로에서 벗어나면 노적봉 정상을 가지전에 전위봉이 있는데 거기까지는 함께간 곽장영전위원장, 친구분 그리고 나도 쉽게 접근했다. 그러나 막상 노적봉 앞에 가면 5미터 정도의 암벽이 있는데 과거에는 쉽게 올라갔었는데 이번에 올라가려니 잘 안된다. 신발 탓을 하자면 경등산화이긴 하지만 요즘은 거의 신지 않는 비브람에 가까운 신발인지라 작은 홀드를 밟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전위봉 아래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싸가지고 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어떤 등산객이 로프를 설치하길래 우리도 함께 사용해도 되냐고 묻고 같이 올라갔다. 노적봉 정상에 서니 마음에 묻어있던 때가 바람에 다 날려가는듯 하다. 역시 산은 세속에 물든 나를 정화시켜준다.
설악산에 단풍구경 가야하기에 워밍업을 하기위해 온 산행이었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등산을 자주 하지 않은 탓이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2주에 한번은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요즘 몇년 동안 등산을 거의 못했는데 올해는 가끔은 가는 편이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노적봉에서 내려와 노적사쪽으로 난 길을 내려오다가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나도 다시 바위에 붙는 날을 기약해 본다. 하산을 완료하고 산오리님의 친구분이 갈비탕을 잘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점심을 먹고 좋은 구경했다면서 갈비탕을 하나씩 포장해서 주었다. 집에 가져와 나누어 먹었다.
한번 더 산에 다녀와야 설악산을 갈만한 워밍업이 충분할 것 같다. 단풍이 살짝 들기 시작하는 노적봉이 참 아름다웠다.


북한산 노적봉에 10년만에 가본듯하다. 산은 역시 변한 것이 없었고 나를 반겨준다.
구파발쪽으로 해서 3명이 다녀왔는데 등산코스는 위문까지 다 올라가서 만경대 아래를 돌아 북한산산장 쪽으로 20분쯤 가다가 노적봉으로 갈라졌다.
노적봉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위험로라고 표시되있는 곳을 넘어 들어가야 한다. 가파르지만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5분만에 도착했다. 전망은 북한산 북쪽이 모두 보이는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것이라 가슴이 탁 트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잠시 쉬었더니 추위가 느껴질 정도다.
등산로에서 벗어나면 노적봉 정상을 가지전에 전위봉이 있는데 거기까지는 함께간 곽장영전위원장, 친구분 그리고 나도 쉽게 접근했다. 그러나 막상 노적봉 앞에 가면 5미터 정도의 암벽이 있는데 과거에는 쉽게 올라갔었는데 이번에 올라가려니 잘 안된다. 신발 탓을 하자면 경등산화이긴 하지만 요즘은 거의 신지 않는 비브람에 가까운 신발인지라 작은 홀드를 밟기 어려웠다.
포기하고 전위봉 아래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싸가지고 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어떤 등산객이 로프를 설치하길래 우리도 함께 사용해도 되냐고 묻고 같이 올라갔다. 노적봉 정상에 서니 마음에 묻어있던 때가 바람에 다 날려가는듯 하다. 역시 산은 세속에 물든 나를 정화시켜준다.
설악산에 단풍구경 가야하기에 워밍업을 하기위해 온 산행이었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등산을 자주 하지 않은 탓이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2주에 한번은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요즘 몇년 동안 등산을 거의 못했는데 올해는 가끔은 가는 편이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노적봉에서 내려와 노적사쪽으로 난 길을 내려오다가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나도 다시 바위에 붙는 날을 기약해 본다. 하산을 완료하고 산오리님의 친구분이 갈비탕을 잘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점심을 먹고 좋은 구경했다면서 갈비탕을 하나씩 포장해서 주었다. 집에 가져와 나누어 먹었다.
한번 더 산에 다녀와야 설악산을 갈만한 워밍업이 충분할 것 같다. 단풍이 살짝 들기 시작하는 노적봉이 참 아름다웠다.


2008년 10월 3일 금요일
등산화를 사다
오랜만에 새 등산화를 샀다.
송림제화 이월상품으로 85,000원 주고 샀다. 송림제화는 1936년부터 신발을 만들어왔고 수제등산화로 유명한 곳인데 수제화는 비싸기도 하지만 당장 필요하지도 않아서 이월상품이 싸게 나왔길래 샀다.
을지로3가에 송림제화가 있는데 사가지고 오다가 지하상가에서 모자를 팔길래 8천원주고 하나 샀다. 나는 등산모자로 미군모자를 선호하는데 이것도 오랜만에 샀다.
등산이란 산행을 하기전부터 즐거운 것인데 등산화를 산것만으로도 이미 즐겁다.
송림제화 이월상품으로 85,000원 주고 샀다. 송림제화는 1936년부터 신발을 만들어왔고 수제등산화로 유명한 곳인데 수제화는 비싸기도 하지만 당장 필요하지도 않아서 이월상품이 싸게 나왔길래 샀다.
을지로3가에 송림제화가 있는데 사가지고 오다가 지하상가에서 모자를 팔길래 8천원주고 하나 샀다. 나는 등산모자로 미군모자를 선호하는데 이것도 오랜만에 샀다.
등산이란 산행을 하기전부터 즐거운 것인데 등산화를 산것만으로도 이미 즐겁다.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매일노동뉴스에 두번 기사화 되다.
한겨레와 ytn 의 기사와는 초점을 달리하여 매노에 두번 기사가 나왔다.
매노는 포괄임금이 무효라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노동문제에 깊이 관심있는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같았다.
포괄역산제 단협보다 불이익 있으면 무효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83067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믿음으로 길을 걸었을 뿐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83318
매노는 포괄임금이 무효라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노동문제에 깊이 관심있는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같았다.
포괄역산제 단협보다 불이익 있으면 무효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83067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믿음으로 길을 걸었을 뿐이다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8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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